[잡부의 노트] 라떼 이야기: 감각기르기

Eunbi Abigail Choi
9 min readJun 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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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마케터> ‘마케터의 마케팅, 그리고 글쓰기 모임’ 활동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마케터가 되려고 준비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마케터가 되어 있는 8년 차 마케터의 라떼 이야기다.

라떼는 말이야…

마케터가 꿈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대학에서 공부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정말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공부한 것들이 모두 쓸데없지는 않았다)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다는 것이 예전보다 대단한 일이 아닌 요즘 시대지만, 학교를 들어가고 졸업하기까지 어렵지 않은 것은 없었다. 나는 남들보다 늦게, 어렵사리 졸업을 했다. 이 이야기는 차차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유학 생활을 정리할 때쯤, 포지션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들어와서 뭘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생각도 없었다. 아는 분이 소개해주신 자리라서 그냥 별 준비 없이 면접 자리에 갔다. 이때까지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는 마케터의 자리. 사실을 말하자면 면접 당일까지 내가 마케터로 들어가는지 뭐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별다른 준비도, 취준생활도 없이 바로 중견기업의 마케터로 취직하게 되었다.

준비 없이 시작된 회사생활, 준비 없이 시작된 마케터.

라떼는 마케터라는 직함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마케팅 담당 사원’ 이 존재했다. 이제 막 구글 애널리틱스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때였고, 지금처럼 마케팅이 세분되지도 않았던 때이다. 그때는 지면이나 TV 광고가 대접받던 시대였고, 광고회사가 마케터들의 최종목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나는 500여 명이 근무하는 중견기업의 마케터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케터는 물론, 회사생활에 대한 준비는 1도 되어 있지 않았다. 엑셀도 전혀 할 줄 몰랐고, 한국어로 논리적인 글쓰를 잘 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일을 제시간에 끝내는 요령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해외에서 유학하고 인턴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자라 취준을 해온 다른 또래보다도 ‘한국회사 기준에서’ 일에 대한 감각(센스)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내가 갖춘 것이라고는 8년여의 유학 생활로 다져진 적응력, 끈기, 깡밖에 없었다.

회사에 들어갔으니…어쨌든 해내야했다

‘해외 업무를 하는 디지털 마케터 (지금 다시 정의해본 그때의 내 포지션이다)’라는 애매한 포지션과 나이 많은 신입이라는 것 때문에 내게 처음부터 붙여진 사수는 없었다. 내가 한 일은 회사에서 처음 하는 일이었고, 내가 하는 리서치는 어떠한 선행 자료도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유학 생활처럼 어떤 것도 쉬운 것은 없었다.

부서에서 따로 정해준 사수가 없는 대신, 부장님이 직접 일을 가르쳐 주셨다.이때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으니, 난 남들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은 아니어도 좋은 사수가 있는 좋은 직장에 다녔던 것 같다.

기본기를 다져준 첫 회사

기본기는 어디에서나 통한다. 마케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일들도 있었지만, 이 시기에 다져놓은 기본기는, 이후 마케팅 스킬업을 더욱더 빠르게 해 주었다.

  1. 기본기 세우기: 쓸데없는 일은 없다

처음 부장님이 내게 시킨 일은 매일 오전, 회사가 속해 있는 분야의 뉴스, 정책, 경쟁사, 해외 소식에 대한 뉴스 클리핑과 인사이트 공유였다. 매일 오전, 일정 시간을 할애하여 관련 뉴스를 찾고 요약하여 정리한 뒤, 전사에 뿌리는 작업을 했다. 임원들 빼고는 보는 사람도 많이 없을 것 같았던 이 사소한 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했다.

아무 데서나 접할 수 있는 뉴스를 왜 정리하나?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본인이 속한 업계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는 임원들은 뉴스를 하나하나 보고 있을 시간이 없다. 개인적으로 주요 뉴스와 이에 대한 인사이트 정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메인 지식이 성장했고 빠르게 업계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의 기본기는 매일 반복해야 하는 근력운동과 같다

회의록 정리도 내 역할이었다. 나눈 이야기들을 복기하고 정리하면서 다양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었다.

뉴스 클리핑이나 회의록 정리는 남들이 들춰보지 않는 이런 사소한 업무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쌓여 업무와 업계의 기본 지식이 내 것이 되었고 회사가 속해있는 도메인 사업의 이슈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도메인 지식이 있는 마케터와 없는 마케터의 차이는, 초행길 내비게이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2. 데이터로 다지기: 그 데이터가 아니고요.

마케팅 리서치 또한 내 업무였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신사업 분석, 정책 분석, 경쟁사 서비스 분석 등. 굵직한 리서치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졌다. 리서치의 많은 부분이 자료조사기 때문이다. 리서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데이터다. 숫자로 이뤄진 데이터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쉽게 말해 ‘근거’ 이다.

백데이터가 없으면 절대로 산출물로 내지 말라는 것이 부장님의 요구였다. 근거가 정확하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나 정책 분석이나 신사업 분야의 스터디는 하나의 문장을 쓰기 위해 공신력 있는 자료들을 찾아내고 몇십 장이나 되는 자료를 분석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마케터가 메일 보는 숫자 말고…백데이터 말이죠

이때의 나는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일을 마치기 위해 리서치 자료 몇백 장을 밤을 새워서 읽고 정리하기 일쑤였다. 분석되지 않은 자료, 빈약한 논리는 회사가 진행 중인 사업들에 큰 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매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내가 맡았던 업무 중 하나는 블로그 콘텐츠였다. 일주일에 3번 소프트한 글쓰기를 해야 했고 한 달에 한 번 심층 리포트를 내던 하드한 스케쥴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포스팅이라고 해도, 정확한 사실관계와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러 번 고치고 보완해야 했다. 누가 나서서 사수가 되어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해가며 보완하고 고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백데이터를 갖추기 시작하니 화려한 문장력은 아니어도, 정확하고 명확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하는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근거가 생기니 내가 하는 일들이 조금 더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3. 투명성 유지하기: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일의 진행을 공유하기

나는 모르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았다. 부끄러움은 애초에 대학교에서 나보다 5–6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버렸다.

해외에서 인턴십 해보면 알겠지만, 인턴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일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인턴은 일을 가르쳐달라고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선배들이 하나라도 더 알려주는 것이다. 회사생활은 처음이지만, 인턴십 때 길러진 끈기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솔직하면 어느정도 면죄부가 주어지지만 웃음으로 때우면 큰일난다

모른다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거 모르는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해요? 이건 어디로 가야 해요? 라고 물어보며 얼굴에 철판 깔고 이 부서 저 부서 돌아다니면서 내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다. 데이터를 자주 다루기 때문에 엑셀을 사용할 일도 많았는데, 부서 내 엑셀의 신은 바로 위 네 살 어린 대리님이었다. 나는 부끄러움도 자존심도 없이 대리님 쫓아다니면서 내가 필요한 지식을 쏙쏙 뽑아올 수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위아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내가 하는 일은 언제 시작했으며 어느 경로로 가고 있고 어떤 결과가 보이는지에 대해 부장님과 공유했다. 부장님이 내게 항상 공유하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을 하다가 일의 진행 방향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아니면 더 쉬운 방법이 있을 것 같은 때 나는 부장님을 찾아가서 의논했다.

솔직하고 투명하게 일을 하기 시작하니 상관들은 내게 믿고 일을 맡기게 되었다. 내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지 예상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모르는 것을 어필하고 다니니, 선배들은 내게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 일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어떤 것도 쓸데없는 일은 없다.

첫 회사에서, 마케터로 처음 쌓은 기술들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보잘것없고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사실 나 자신을 마케터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첫 회사를 5년 다닌 뒤 퇴사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했던 그 재미없던 일들이 마케터로서, 회사원으로서 다져야 하는 ‘감각’을 기르는 기본기였다는 것을 일하면서 계속 실감하게 된다.

일의 기본기, 백데이터, 투명성은 지금도 내가 지키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감각’적으로 타고난다고 한다. 태생이 손이 빠르고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나는 감사하게도 ‘감각’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상대적으로 빨리 터득하는 편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내게 어느 것도 쉬운 것은 없었다.

첫 회사생활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하혈하기도 하고, 일을 들고 집에 가는 것이 태반이었으며,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어떻게든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느라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라떼는 그랬다.

마케터라면 이직을 할 때마다 신입이 되어서 다시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는데, 이때 익힌 기본기는 사회생활 8년 차인 지금도 잘 먹히고 있다. 그러면 이건 라떼니까 통한 것이 아닌 ‘감각’을 기르는 방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일을 잘한다는 것’의 저자 야마구치 슈의 인터뷰를 봤다. 감각에 관해 이야기 한 부분에서 야마구치 슈는 ‘골동품 가게는 어떻게 제자를 기를까요? 위조품을 걸러내는 능력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진품을 계속 보여주는 겁니다. 오래 진품을 보다 보면 위조품을 보았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영원히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감각은 시간을 들여 길러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영원히 감각을 기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과 다른 쉬운 길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우리는 기본기를 쉽게 포기한다. 그러나 야마구치 슈는 ‘좋아서, 숨을 쉬듯 계속한다는 자세가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인터뷰 내용 출처: 폴인, 야마구치 슈 인터뷰>

‘좋아서, 숨을 쉬듯이’는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끈기있게 일을 하고 감각을 기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다른 길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잠시 떠났던 그때, 오히려 마케팅에 재미를 느끼고 다시 돌아온 데에는 초년생 시절 기른 일의 기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길러진 기본기가 내 ‘감각’을 길러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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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i Abigail Choi

데이터 기업의 마케터로 일하다가 지금은 스타트업에 합류. 저는 프린세스메이커입니다